할아버지 안녕 나 채영이 두 번째 편지야 이번엔 못 보러가서 여기다가 써 앞전에 할아버지 보러 갔을 때 안 울려도 일부러 어린애처럼 굴었어 울면 진짜 실감 날 거 같아서 근데 나 좋자고 그런 거 같아서 미안하네 할아버지 난 솔직히 누군과의 영원한 이별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경험이 없잖아 그래서인지 난 아직도 할아버지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할아버지 집 놀러 가면 나 반겨줄 거 같고 하루 자고 가라고 할아버지랑 살자고 그럴 거 같은데 내 안일함이 문제였어 나에게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 할아버진데 그러면 더 안일해선 안됐는데 지금 이렇게 편지 쓰는 내 모습도 너무 어색하고 낯설어 한 번이라도 할아버지 더 안아주고 얘기 들어주고 같이 사진 한장이라도 찍어둘 걸 맨날 술 마신다고 구박만 했지 내가 해준 게 없어 먼저 할아버지한테 전화한 적도 없고 할머니랑 전화하다가 일 이분 짧게 통화한 게 전부야 난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고 그래도 할아버지는 나중에 나 크면 할아버지는 아니더라도 할머니한텐 잘해줘야 된다고 그랬는데 그 약속조차도 못 지키게 됐네 할아버지도 내 결혼식 보겠단 약속 못 지켰으니까 쌤쌤이로 치자 그러면 내 맘이 좀 편할 거 같아 3월 25일 할아버지가 떠난 날 벚꽃이 엄청 휘날렸고 날씨도 엄청 화창하고 좋았어 남들은 신나게 벚꽃 노래 들으면서 드라이브 가고 구경 가는데 난 이제 벚꽃 보는 게 그렇게 신나지가 않아 좀 슬퍼 그래도 내가 행복하면 할아버지도 행복하겠지 근데 솔직히 좀 두려워 할머니는 내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한순간에 등을 돌렸어 그래도 할아버지만큼은 나한테 진심이었길 바래 요즘엔 왜 내 꿈에 안 나타나줘 많이 보고 싶은데 내가 공부 열심히 안 해서 그런가 내 든든한 지원군 할아버지만 믿고 중간만 하려다 보니까 ㅎㅎ 어쩔거야 이제!! 근데 난 할아버지 원망 안 해 아직 짧은 인생 19년이지만 내 인생에 할아버지가 있어서 할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서 할아버지가 내 할아버지여서 너무나도 영광이었어 다음생이 정말로 있다면 다음생에는 좀 더 오래오래 같이 있자 내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끔 편지 쓸게 몇 번을 쓰고 지우고 열심히 쓴 거니까 할아버지도 열심히 읽어줘 전혀 고3 같지 않지만 난 고3이니까 다음 편지가 좀 늦을수도 있어 그래도 나 생각하고 기다려줘 아 그리고 엄마도 이제 할아버지 때문에 안 울어 다행이지 내가 엄마 잘 챙겨줄 테니까 걱정 하지 마!! 할아버지도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야 돼 다음 편지에선 밝게 보자구 지금 새벽인데 이거 몰래 쓰다가 엄마가 나 공부 안한다고 혼냈어 난 나름 괜찮은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지 말이 넘 기네 좋은 꿈 꿔 할아부지 꿈에서 만나자 내가 많이 사랑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할게 ❤️